[로컬밀 프로젝트 제주]
02.연대가 이어지려면
[연대가 이어지려면 - 생산자와 작업자 사이의 신뢰에 대하여]
한 번의 경험으로 농부님의 농사 전체를 판단할 수는 없지만, 거래에서 확인한 내용과 끝내 답을 얻지 못한 질문은 기록해두려 합니다. 다음 작업자가 같은 혼란과 비용을 겪지 않기를 바랍니다.
로컬밀 프로젝트 제주는 제주밀을 매개로 생산자·작업자·소비자가 지속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먹거리 연대 실험입니다. 지역밀이 일회성 체험에 그치지 않고 일상의 먹거리로 이어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함께 살펴보고자 시작했습니다. 첫 단계는 여러 소농분들의 원맥, 제분하기 전 밀알을 구입해 공동제분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제가 찾아본 다른 농가에서는 필요한 물량을 확보하기 어려워 한 농가에서 모두 구입했습니다.
농부님께 처음 제시받은 가격은 1kg에 8,000원이었습니다. 농부님은 같은 밀을 농민장터에서는 일반 고객에게 7,000원에 판매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약 500kg을 구매할 계획이어서 수량을 고려한 가격을 요청했지만, 최종 단가는 7,500원으로 정해졌습니다. 제분소 최소 수량을 맞추면서 실제 구매량은 560kg이 됐습니다.
장터에서 판매한다고 들은 가격보다 높았지만, 생산비와 노동을 충분히 알지 못한 상태에서 값을 더 낮추기보다 농부님이 제시한 조건을 존중했습니다. 지속적으로 밀을 사용하려면 가격 결정권을 농부가 가져야한다고 생각했었고, 그 가격은 다음 농사를 준비할 수 있는 가격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그 가격을 받아들였습니다.
원맥을 구입할 당시에 정부비축 매입가격을 알고 있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안내한 2026년 제빵용 밀의 매입단가는 1kg에 1,015원으로, 10kg에 10,150원입니다. 제가 구입한 원맥은 같은 중량에 75,000원이었습니다.
가격 차이는 알고 있었지만, 정부비축과 개별 직거래를 같은 조건으로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품종과 품질, 재배 방식과 거래 규모가 다를 수 있고, 제가 농부님의 생산비와 노동을 충분히 아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부 단가를 근거로 값을 더 낮추기보다, 농부님이 제시한 조건을 존중해 구입했습니다.
보다 직접적인 의문은 밀가루 판매가격을 확인하면서 생겼습니다.
농부님은 로컬밀 프로젝트 이야기를 듣고, 작업자들이 지역밀을 사용하는 데 겪는 어려움을 더 알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후 저와 동일한 제분소에 밀 제분을 맡기셨고, 제분한 밀가루를 모두 판매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당시 작업자분들로부터 제주밀 구매 문의를 받고 있던 저도 판매에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구매 정보를 안내하려면 먼저 품목과 가격을 정확히 알아야 했습니다. 밀가루 가격을 처음 여쭌 이유입니다.
그런데 안내받은 조건을 같은 중량으로 비교하니, 밀가루 단가가 제가 구입한 원맥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원맥 1kg당 7,500원에 더해 제분비 1kg당 1,500원과 운송비 총 60만 원을 별도로 부담했습니다. 농부님도 같은 제분소에서 동일한 단가로 제분하셨기에, 가공 전 원맥과 가공을 마친 밀가루의 가격이 비슷한 이유를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물론 제분비가 같다고 해서 운송비를 비롯한 모든 비용과 거래 조건까지 같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제가 알지 못하는 다른 조건이 있었는지 확인하고 싶어, 두 가격이 각각 어떤 기준으로 정해졌는지 조심스럽게 전화와 문자로 여쭈었습니다.
7월 21일 전화와 문자로 연락드렸으나 9월 22일 현재까지 해당 문의에 대한 답변을 받지 못했습니다.
농부님의 사정을 제가 모두 알지는 못합니다. 모든 원가를 공개해달라는 뜻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두 가격에 서로 다른 조건이 있었다면 설명을 듣고, 제가 놓친 부분은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바로 답하기 어려우셨더라도 그 사정을 알려주셨다면 기다리는 마음은 달랐을 것 같습니다.
아쉬움은 가격의 차이보다, 그 차이를 이해하려던 질문에 답을 듣지 못한 데 남았습니다. 그러면서 다음 거래를 이어가거나 다른 작업자에게 구매를 권할 만큼의 신뢰를 갖기 어려워졌습니다.
제가 바라던 것은 농부님이 다음에도 밀을 기르고, 작업자는 다시 구입해 사용할 수 있는 관계였습니다. 생산자의 노동을 존중하면서도, 구매에 필요한 질문은 편히 나눌 수 있었으면 했습니다. 생산자의 노동을 존중하는 마음이 구매자의 질문을 접어야 할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다음 구매에서는 품목과 비용, 공급 조건을 미리 구체적으로 확인하려 합니다. 이 기록이 지역밀을 처음 구입하는 분들께 거래 전에 무엇을 살펴보면 좋을지 생각해보는 데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