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밀 프로젝트 제주] 01. 밀가루는 어디서 왔나
밀은 어디서 왔는가
빵을 만들며 밀가루를 고르는 일은 늘 중요했습니다. 여러 가루를 사용하면서 반죽의 상태와 빵의 맛을 살폈고, 각 재료에 맞는 작업 방법을 찾아왔습니다.
그러다 관심은 자연스럽게 밀가루가 되기 이전의 과정으로 옮겨갔습니다. 어떤 밀인지뿐 아니라, 어디에서 자랐고 누구의 손을 거쳐 이곳에 도착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빵집에서는 밀가루를 받아 반죽하고, 발효하고, 굽습니다. 그러나 제가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도 그 재료를 위해 이루어진 일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씨앗을 심고 곡물을 길렀으며, 수확한 알곡을 가루로 만들었습니다. 매일 사용하는 재료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포대 안에 담긴 밀가루만이 아니라 그 앞의 일도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궁금증을 따라 직접 길러본 곡물은 호밀이었습니다. 300평 밭에 호밀을 심고, 기르고, 수확했습니다.
가루로만 접하던 재료를 밭에서 작물로 만나는 경험이었습니다. 빵을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재료를 고르던 제가, 그 재료를 생산하는 쪽의 일을 조금이나마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직접 기른 호밀로 빵을 굽기 위해서는 수확한 알곡을 가루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단계에서 막혔습니다.
제주 안에서 제분을 맡길 곳을 수소문했지만, 제가 수확한 양을 받아 가공해 줄 곳을 찾지 못했습니다. 호밀은 거두었으나, 빵에 사용할 재료로 바꾸는 방법은 마련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때까지 제 관심은 주로 어떻게 기르고, 어떤 빵을 만들 것인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 제분은 그 사이에 필요한 과정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어디에 맡기고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하는지는 충분히 알지 못했습니다.
밀가루를 구입할 때에는 이미 해결되어 있던 일이, 직접 농사를 짓자 제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나타났습니다.
당시 마주한 문제는 단순히 제분 시설의 유무가 아니었습니다.
소량의 수확물을 맡길 수 있는지, 빵에 쓸 가루로 가공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생산자와 작업자가 찾아 이용할 수 있는지가 중요했습니다.
곡물을 기르는 일과 그것으로 먹거리를 만드는 일 사이에는 별도의 기술과 설비, 이를 연결하는 정보가 필요했습니다.
한 번의 호밀 농사로 지역의 상황 전체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 경험은 제가 지역 곡물을 바라보는 기준을 바꾸었습니다.
지역에서 생산했다는 사실만으로 그 재료를 지역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수확 이후의 보관과 가공, 실제 사용까지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제 작업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는 지역밀을 쓰고 싶다는 마음에 더 구체적인 질문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농부가 수확한 곡물을 어디에서 제분할 수 있는지, 작업자는 어떤 조건의 가루를 필요로 하는지, 그 사용이 다음 농사로 이어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살펴야 했습니다.
제가 겪은 막막함을 개인의 시행착오로만 남기지 않으려면, 생산과 사용 사이에서 무엇이 연결되지 않았는지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밀은 어디서 왔는가’라는 질문은 그렇게 ‘이곳에서 자란 곡물은 어떻게 우리의 빵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로컬밀 프로젝트 제주는, 호밀을 수확하고도 곧바로 빵을 만들 수 없었던 그 경험에서 시작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