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라밀] 자작자작 담그는 밀🌾
날짜 : 2026년 8월 14일
장소 : 제주소통협력센터
지난 8월 14일, 제주소통협력센터에서 로컬밀 프로젝트 제주의 워크숍 '자작자작 담그는 밀'을 진행했습니다. 이번 워크숍은 제주에서 자란 밀을 빵이나 면의 재료로만 바라보지 않고, 우리의 평범한 식탁 안에서 조금 더 다양한 방법으로 경험해보기 위해 마련했습니다. 이번 워크숍에서는 제주밀과 제철 채소로 여름 김치를 만들었습니다. 찹쌀풀 대신 제주밀로 풀을 쑤어 열무와 얼갈이, 고구마순으로 김치를 담그고, 시원한 국수를 만들어 함께 먹었습니다.
김치에 사용할 채소는 제주시 연동의 아울림 농장에서 준비했습니다. 농부님이 아침에 수확한 채소를 시원한 아이스박스에 넣어두면, 주문한 사람이 찾아가 직접 꺼내오는 작은 무인 채소상점 같은 곳입니다. 이번에는 양파와 홍고추, '통째로' 라는 품종의 고구마순, 양파(못난이 양파라고 하셨지만 전혀 못난이가 아닌!)를 가져와 함께 사용했습니다. 아주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재료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한 끼를 준비하는 일을 참 좋아합니다. 밀도 채소도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길렀는지를 알고 나면 재료를 조금 더 자세히 바라보게 됩니다. 다만 그 이야기가 재료의 가치를 모두 대신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직접 만지고 맛보고 사용해보는 경험까지 함께 있어야 비로소 한 재료를 제대로 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밀가루는 흔히 빵이나 과자를 만들기 위한 재료로 익숙하지만, 풀을 쑤거나 국수와 수제비를 만들고 여러 음식의 농도를 더하는 등 우리의 일상적인 음식 속에서도 다양하게 사용되어 왔습니다. 이번 워크숍에서는 이러한 밀의 쓰임을 직접 경험하며, 한 가지 곡물이 우리의 식탁에 얼마나 여러 모습으로 자리할 수 있는지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밀을 설명으로만 이해하기보다 직접 만지고, 조리하고, 맛보는 과정을 통해 제주밀의 질감과 맛을 자연스럽게 경험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특별한 재료보다, 익숙한 재료가 되기를]
로컬밀 프로젝트 제주를 시작하며 자주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제주밀이 언제까지나 ‘특별한 밀’, 혹은 한 번쯤 경험해보는 지역의 재료로만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제주밀을 단지 ‘제주에서 난 밀’이라는 이유로 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농부가 만들었다는 이유로 모든 생산물을 낭만적으로 바라보거나, 가까운 지역에서 생산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재료에 당연한 가치를 부여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물론 어디에서, 누가, 어떤 방식으로 재료를 만들었는지 아는 일은 중요합니다. 지역과 생산자의 이야기는 우리가 재료를 이해하는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한 재료가 오래 선택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계속 사용되는 재료가 되기 위해서는 맛과 향, 품질과 쓰임, 작업성, 가격, 그리고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는 조건까지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로컬이라는 이름은 가치의 결론이 아니라, 재료를 제대로 들여다보기 위한 시작점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제주밀 역시 지역적 의미에만 머무르기보다, 하나의 밀로서 더 구체적으로 알아가고 싶습니다. 어떤 맛과 향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음식에 잘 어울리는지, 어떤 방식으로 다루었을 때 장점과 한계가 드러나는지 직접 사용하고 기록하며 확인해보려고 합니다. 언젠가는 ‘제주산이라서 의미 있는 밀’보다 ‘이 밀로 만들었더니 맛있었다’는 경험이 제주밀을 다시 찾는 가장 자연스러운 이유가 되었으면 합니다.
어느 날에는 빵을 굽기 위해 밀가루를 고르고, 어느 날에는 국수를 삶고, 또 어느 날에는 김치를 담그기 위해 자연스럽게 꺼내 쓰는 재료. 제주에서 자란 밀이라는 사실을 매번 크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우리 곁에서 흔하고 익숙해지는 것. 그것이 이 프로젝트를 통해 오래 보고 싶은 모습입니다. 그래서 이번 워크숍에서도 제주밀로 낯설고 특별한 음식을 만들기보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일상의 음식 안에 밀을 넣어보았습니다. 김치를 담그는 풀로 사용하고, 국수를 삶아 한 끼를 나누면서 제주밀이 특별한 날의 재료가 아니라 평범한 식탁에서도 자연스럽게 쓰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함께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지역의 밀이 계속 사용되기 위해]
한 알의 밀이 밭에서 자라 수확되고, 제분되어 밀가루가 되고, 다시 작업자의 손을 거쳐 음식이 되기까지 여러 사람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역에서 밀이 계속 재배되기 위해서는 농부가 생산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밀을 꾸준히 사용하는 작업자가 있고, 만들어진 음식을 먹고 다시 찾는 사람이 있어야 다음 생산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생산자와 작업자, 소비자 가운데 어느 한쪽만을 중심에 두기보다 서로가 필요로 하는 조건을 함께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뜻만으로 사용하는 재료가 아니라, 실제로 사용하기 좋은 재료가 되는 것. 그리고 생산하는 사람도, 사용하는 사람도 무리하지 않고 계속 이어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 그런 경험과 논의가 쌓여야 제주밀도 일상의 재료로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워크숍 역시 그 가능성을 확인해보는 작은 경험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밀을 먹는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갑니다.]
밀은 빵이 될 수도 있고, 국수가 될 수도 있고, 김치를 담그는 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작자작 담그는 밀'은 제주밀의 가능성을 거창하고 특별한 음식보다 우리의 평범한 한 끼에서부터 찾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도 동그라밀에서는 밀을 굽고, 삶고, 튀기고, 발효시키며 다양한 방식으로 만나보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제주밀의 좋은 점만 이야기하기보다, 실제로 사용하며 발견한 특징과 가능성, 아쉬운 점까지 함께 기록하고 싶습니다.
그런 경험들이 하나씩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제주밀을 사용했다’는 사실 자체가 특별한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는 날도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주밀이 지역의 이야기를 품으면서도 그 지역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재료가 되기를. 그리고 누군가의 부엌과 작업실에서 맛과 쓰임으로 자연스럽게 선택되는 흔하고 익숙한 밀이 되기를 바라며 그 과정을 계속 기록해보겠습니다. 함께 밀을 만지고 음식을 만들며 시간을 나누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